난 병신이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기만 해 왔다.
내가 정말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번에야 말로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던 것들은 몇 번의 실패 후에 내 마음 속에서 사라졌다.
그럴 때 마다 병신같은 나는, 내 자신에게 한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생각해 보니 나하고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자세히 보니까 이러이러한 단점들이 있다고.
수많은 장점 사이에 있는 작은 단점 하나를 너 이녀석 잘 걸렸다는 마음으로 찾아 내어, 그걸 핑계로 매번 쉽게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나는 스물 다섯이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지방에 있는 한 지잡대를 다니고 있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일년 전에 휴학을 했고, 군대는 가기 싫어서 계속 미뤘다. 학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월 수 금 야간 파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고, 그 돈으로 한달 월세 35만원짜리 방을 빌려서 살고, 남은 돈은 배달음식과 게임에 쓰고 있다. 그리고 이게,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모든 문장이다.
어느 날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갑자기 들어 생각해 보았을 때, 겨우 3~4줄의 문장으로 모든 설명이 끝나 버리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슬프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내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글쎄,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아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
하고싶은 일이라니, 나는 그냥 일 안하고 놀고 먹는 백수가 되고 싶은데.
아 씨발,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항상 그렇다, 되도 않게 미래를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아 감정이 이상해진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지금까지 병신같이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 그리고, 지금 떵떵거리며 잘난 듯이 살아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섞인 열등감. 그 감정들이 내 안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 왔다. 이럴 때를 위해 나는 냉장고에는 미리 술을 채워 놓았다. 술로 정신을 멍하게 어지러뜨리고, 담배 하나를 태우면서 마음을 부옇게 만들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좆같은 감정들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종이컵에 얼음을 대충 넣고, 위스키로 가득 채웠다. 빠르게 취하는 데에는 소주보다 위스키가 직빵이라는 걸 편의점 알바를 하다 위스키를 깨먹고, 병을 치우다 남아 있는 두모금 정도를 몰래 마시고 카운터에서 잠들고 나서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 컵을 주욱 목으로 털어 넣었다. 도수 높은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느낌이, 기분 좋게 온 몸으로 퍼졌다.
다시 한컵을 가득 채우고, 주욱.
그리고 담배를 찾는다, 책상 위에 올려둔 담배에서 한 개비를 꺼내… 시발 없잖아.
하는 수 없이 나는 바닥에 쌓인 옷들 사이에서 대충 아무거나 걸칠 것을 하나 꺼내 입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현관을 나서자, 갑자기 부는 차가운 바람에 순간적으로 세상이 뒤집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갑자기 들이 부은 스트레이트 위스키 두잔은 너무 무리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써 정신을 붙잡고 왼손을 들어 뺨을 두어 번 후려 갈겼다. 안되겠다, 빨리 담배만 빨고 잠이나 자야겠다. 그렇게 난 흔들리는 골목길을 지나, 꿈틀거리는 횡단 보도를 건너고,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평소 피우던 담배를 두 갑을 사고 나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반대편 신호등의 빨간 불이 켜진 사람 모양이 흔들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마치 저 새끼가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띠껍게 흔들거리는 빨간 새끼를 쳐다보면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기분 좋게 쪽 빨았다.
.
잠깐.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
.
어디선가 조금씩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해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웅웅거리는 소리는, 갑자기 큰 소리로 끼기긱 거리는 소리와 찢어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새하얀 빛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빚이 자동차의 라이트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그것이 자동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내가 서있는 곳이 횡단보도의 위라는 것을 알았다.
찰나의 순간, 건너 편의 빨간 새끼는 여전히 흔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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