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후 며칠 간, 평범한 학생을 연기하며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난, 지금 자신이 단순한 타임 슬립을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나 사건이 전부 바뀌어버린 세계’ 에 떨어졌다.
먼저, 비트코인과 테슬라와 같은 투자 관련한 정보들은, 기업들의 이름이 전부 내가 원래 살았던 세계과는 바뀌어 있었다. 물론, 가상 화폐나 전기차는 여전히 이 세계에 존재하긴 했지만, 가상 화폐는 어찌 된 일인지 아직 2015년인데도 값이 미친듯이 올라 있었고, 전기차는 개발하는 회사가 너무 많아서 주가가 오른다고 확신할 수 있는 회사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조차 않는다 이 세계는!
그 밖에 내가 확인해본 결과, 스포츠 결과의 성적, 자연재해등이 일어난 장소, 큰 사건이 일어난 나라 등이 조금씩, 전부 바뀌어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넌 절대로, 쉽게 놀고 처먹는 삶을 살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절망했다.
아무런 특별한 변화도 없이 과거로 돌아온 걸로도 모자라, 미래조차 예측할 수 없는 타입 슬립이라니? 애초에 미래를 모르는 시점에서 이건 타임슬립이 아니다. 나는 그냥, 중학교 1학년때부터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마치 전에 살았던 스물 다섯까지의 삶이 단순히 길고 끔찍한 꿈이었고, 최근에서야 겨우 꿈에서 깨어나, 진짜 나의 본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나는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도 영혼이 반쯤 빠진 채로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가 싶어 인터폰을 보자, 화면 너머에는 아주 익숙한 얼굴이 농구공을 들고 서 있었다.
“야! 농구하자!” 윤우는 지금 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태평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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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 농구교실을 일주일도 다니지 않고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해도 드리블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우 일주일도 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라는 표현을 쓰는 게 우습긴 하지만, 우습게도 초등학교 때의 나, 그리고 당장 이전 생의 스물 다섯의 나는 겨우 그 정도의 노력에 ‘아무리 해도’ 라는 수식어를 마음대로 같다 붙혔었다. 포기에 대한 변명의 방패로 사용하기 위해서.
아무튼, 그렇게 농구를 버렸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고등학교 때의 나는 농구를 엄청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었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농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첫번째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급별 농구 대회가 있었고, 쓸데없이 반에서 두 번째인가로 키가 컷던 내가 선수로 억지로 선발된 것이다.
그때 나는 드리블을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패스를 받으면 슛을 던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하지만 정말 골 때리는 사실이, 내 힘으로 던질 수 있던 공의 거리와 삼점 라인부터 골대까지의 거리가 너무나도 우연히도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팔에 힘이 빠지기 전까지 엄청난 슛 정확도를 보여주며 우리 학급을 학년 결승까지 올리게 되었고, 그건 반의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집중해 주었던 몇 안되는 좋은 기억이었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체육 시간이었다.
남자 고등학교였던 우리 학교의 체육 시간은 다른 학교와는 조금 달랐다. 그냥 니들 하고싶은거 해라, 대신 쉬면 죽는다. 라는 방침 하에서 모든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남자애들이 전부 운동장에 달려 나가 축구공을 차고 있을 때,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혼자서 농구 코트에 가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몇 십번, 몇 백번을 슛을 던졌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드리블 연습도 해 봤다. 역시나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했다. 안 되니까 짜증난다는 감정이 들기 보다는, 어차피 뭐라도 해야 하니까 잘 되던 안 되던 그냥 했다. 그것도 몇 십번 몇 백번을 반복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는 드리블을 얼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농구를 좋아하게 된 건. 나는 사교성이 없어서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 했지만, 농구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이 점심시간이나 학교가 끝나고 농구 코트 한켠에서 혼자서 슛을 쏘는 나를 발견해서 몇 번 같이 게임을 한 적이 있었고, 게임만 끝나면 헤어지는 사이기는 했지만, 그 때가 유일하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농구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방에 있는 대학교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농구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종일 학교에 갇혀 있으니까 농구장을 하나의 도피처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대학생이 되어 이젠 내 맘대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농구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재미있었던 게 농구였을 뿐이지, 농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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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폰 앞에서 농구공을 들고 해맑게 서 있는 저 아이는 이런 나의 뒷이야기를 알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갑자기 농구를 하자니.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윤우는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며 툴툴거렸다. 나는 가볍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농구 코드로 갔다.
“갑자기 웬 농구야?”
“내가 저번에 전화했을 때는 몸 안좋다며, 그래서 오늘 다시 온거지”
“그때는 게임 하자고 했었잖아.”
“그랬나? 아무튼 농구도 게임이잖아! 일대일이나 하자.”
정말 시덥잖은 녀석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정말 오랫만에 온 농구 코트, 나는 윤우의 패스를 받아 바닥에 한번 가볍게 튕기고 하나, 둘 스텝을 밟아 슛을 쐈다. 농구장 바닥에 끌리는 운동화의 소리, 농구공의 튕기는 소리, 그 소리가, 너무나도 새삼스럽지만 정겹게 느껴져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농구를 했다. 어느새 하늘은 붉게 물들었고, 힘들어서 잠깐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보니 어느새 시간은 6시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농구하는것도 좋지 않아?”
윤우는 그렇게 말했다.
“어, 그러게”
실제로, 나는 지금의 생활로 다시 태어나고 나서, 며칠이고 머릿속이 여러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아주 맑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농구공을 저 림 안으로 넣는 것, 그것 하나만을 생각하며 몇 시간이고 농구를 했다.
나와 윤우는 지쳐서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옷가지들을 빨래통에 대충 넣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방금까지 공을 튀겼던 손의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윤우와의 1대 1 농구를 떠올렸다. 윤우의 수비를 뚫고 레이업을 올렸을때의 감각, 윤우가 나의 예상을 깨고 3점 슛을 쏴서 골이 들어갔을 때 네트가 공에 감기며 나는 경쾌한 소리. 그것들을 떠올리며, 나는 30분이 넘도록 뜨거운 물을 맞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바로 침대로 가 깊은 잠을 잤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긴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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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의 나는, 언젠가부터 항상 불만을 한가득 마음속에 담고 살았다.
항상 걱정 없이 웃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걱정을 하고 사는 자신의 처지가 짜증났고, 그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바보라고 생각해버리는 조촐한 방어 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났다.
엄청난 재능도, 잘난 부모도, 잘생긴 외모와 예쁜 여자친구도, 인생을 바쳐서 사랑할 무언가도. 아무것도, 없었다.
인터넷 소설, 일본 원작의 판타지 만화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여서, 일본어라도 배울까 해서 들어간 대학교 일어일문과였지만, 역시 공부라는 건 재미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소설은 다 번역이 되고, 굳이 어렵게 단어 문법을 외워가면서 판타지 소설을 읽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공부도 별로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러웠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말이다. 부러운 마음은 그들에 대한 질투심으로 이어졌고, 열정 끝에 성공까지 거머쥔 사람들에 대해선 엄청난 시기와 저주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싶어서 안달난 무언가를, 누군가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고, 그걸 통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괴롭고, 우울하게 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없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있다는 게.
내가 할 수 없는 걸,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결국에는 나의 부모님을 원망했다.
추한 외모를 물려주고, 좋은 습관, 윤택한 경제력, 많은 사랑은 주지 않은 그들을 죽일 듯이 원망했다. 길거리에 좋은 차가 돌아다니면 그 차 안에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가족의 모습이 생각나 괴로웠고, 어린 애들이 좋아보이는 옷이나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그걸 사주었을 부모가 생각나 짜증났다.
불공평해, 불공평해, 왜 나는 노력해도 안돼, 왜 저 씨발새끼들은 처음부터 갖고 있어?
불평, 불평의 연속의 나날을 보내며 살다가, 어느날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는 걸.
공평한 싸움을 하고싶어? 아니면, 너가 유리한 위치에서 다시 싸우고 싶어?
그럼 죽어.
죽고 나서 다음 생에는 잘나게 태어나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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