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오랜만에 중학교 시절 살았던 아파트로 왔다. 그것도 중학교 2학년의 몸으로.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해서 지금이 2016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이곳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아파트는 내가 5살부터 계속 살아왔던, 나에게 ‘집’ 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다.
항상 똑같았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꺼져있는 불, 거실에 가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낮의 햇빛이 안을 따뜻하고게 비추고 있었고, 그 빛은 이 공간이 혼자 있기엔 얼마나 쓸데없이 넓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듯 했다. 집 안은 숨막히게 조용했고, 벽에 걸린 원형 시계의 초침소리가 살며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거실을 바라보고 있자, 참 이상하게,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감정을 나조차 이해할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집에 좋은 추억이라고는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외로웠고,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내 마음 속 트라우마와도 같은 이 공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자신이 가장 외로웠던 공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고, 거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내 방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의 불을 켜자, 침대와 컴퓨터 책상, 옷을 걸어두는 행거가 보였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남자아이의 방이었다.
나는 불을 켜고, 방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천천히 다시 생각했다.
나는 분명 스물 다섯이었다.
나는 분명 보드카 두 잔을 때려 박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오는 길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크게 한번 쪽 빨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기고… 시끄럽고 번쩍! 하더니…
정신을 차리니까 지금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자그마한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내가 지금껏 장난식으로 여러번 생각해 왔던, 나의 바람이었다
‘이거, 전생한거 맞지?’
아니다. 전생은 다른 것으로 바뀌어 태어나는 것. 하지만 나는 그저 과거로만 왔을 뿐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전생이 아니라 시간 여행, 타입 슬립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때의 나는,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났으면(엄밀히 말해, 내가 진짜로 죽었는지 어땠는지조차 모르지만) 전부 전생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나는 설마 꿈인가, 누군가의 장난인가 싶어서 다시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핸드폰의 날짜 화면이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단전에서부터 최대한 숨을 끌어모아서, 외쳤다.
“씨빠아아아아아알!!!!!”
나는 전생했다. 쓰레기 같은 삶에서 다시 중학생으로 돌아왔다! 남들이 장난식으로만 말했던, 인터넷 웹 소설 웹툰으로 대리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전생을 내가 한 것이다! 하루하루 후회, 자기혐오로만 가득 차 있던 삶을 통째로 바꾸고, 이 세상의 정점에 서는 일만 남은 앞으로의 미래가 떠오르자, 나는 온 몸이 미칠 듯한 고양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을 온전히 만끽했다.
진정이 되자, 나는 가장 먼저 할 일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전생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내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아하니, 이세계나 판타지 세계로 떨어지는 패턴은 아닌 것 같다. 흠… 이건 좀 아쉽네, 마법도 쓰고, 가슴 큰 엘프랑도 사귀고 싶었는데.
그리고 또,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인 걸 보니 슬라임이나 거미 같이 다른 종족으로 태어나는 패턴도 아닌 것 같다. 이건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인간인 게 가장 좋거든, 근데 왜 얼굴도 그대로인거냐… 이왕이면 좀 잘생기게 전생좀 시켜주지.
‘그러면 현실 세계에 인간으로 전생이라… 설마 헌터인가?’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켜서, 뉴스를 확인했다. 분명 헌터물이라면, 어딘가에서 게이트가 열려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온다던가, 이상한 탑 같은 구조물이 솟아올랐다던가 하는 뉴스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뉴스에는 아무런 이상 소식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건 하나밖에 없다. 바로 레벨업 시스템! 분명 지금은 눈에 띄는 변화는 하나도 없지만, 특정 조건을 채우면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마치 인생을 게임처럼 살아갈 수 있는, 내가 가장 바란 전생의 시나리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허공에 외쳤다.
“상태창!”
… 이게 아닌가
“스텟 확인!”
…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보통 레벨업 시스템은 처음부터 메뉴화면이 눈앞에 뜨지 않나.
“메뉴!”
“시스템!”
“옵션!”
…
그렇게 나는, 30분 정도를 계속해서 허공에 그럴 듯한 단어를 외쳤다. 하지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는 자그마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자신이 어떠한 특별한 능력도 없이 전생했다는 것.’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떨쳐 내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래서는 전생했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써 그 끔찍한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털어 내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전생의 시나리오가 있는지가 있는지 머리를 짜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는 고민했다.
그때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거다!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시스템이구나!
핸드폰 화면을 보자 수신인은 ‘ㅇㅇㅇ’, 수수께끼 같은 초성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흥분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했다.
“야! 뭐하냐?”
응? 이거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인데?
“누구..세요?”
내가 그렇게 되묻자, 갑자기 전화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오 씨발 이윤우라고 진짜 지랄좀 적당히 해 미친새끼야!”
…
나는, 다시 수신인을 확인했다.
ㅇ.ㅇ..ㅇ…
이.윤...우…
그제서야 떠올랐다, 나 이 새끼를 ㅇㅇㅇ라고 저장했었지.
그렇게 나의 부풀었던 이능력 전생 시나리오는, 허무하게 구겨져 버려졌다.
윤우는 나에게 같이 게임이나 하자고 전화를 건 거였고, 나는 지금 게임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오늘은 몸이 안좋아서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 확실히 너 오늘 몸이 참 많~이 안좋아 보이더라. 좀 쉬고 정신좀 차려라”
윤우에게 심심한 위로를 들으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꿈에 부풀어 하늘로 날아오를 생각만 했던 나는 지금 땅바닥에 처박힌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의아할 수도 있다.
‘다시 중학교 때 부터 살 수 있으면 최고 아니야? 아니 비트코인만 사면 몇백억 버는 거 순식간인데 왜 싫어하는건데?’
그래, 비트코인만 사면 돈 걱정은 없겠지…
응?
와 씨발 그렇네?
난 평소에 판타지 이능력 웹소설만 읽어서, 미처 현실 세계에서 미래를 알고 있을 때의 이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 비록 초능력도 없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지 않으면 어떠냐.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거 다 먹고, 사고 싶은거 다 사는 휘황찬란한 인생을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땅바닥에 처박혀 있던 나의 영혼이, 다시 엔진을 달고 하늘로 솟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흥분해서 컴퓨터를 켜서, 비트코인 거래소를 검색했다.
「결과 없음」
응?
엔진을 달고 솟아오른 나의 영혼은, 다시 멈추고 땅으로 고공 추락했다.
무슨 일인지, 비트코인에 대해서 어떠한 검색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거래소를 빼고 ‘비트코인’ 이라고만 검색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단어인 것 처럼, 이상하고 섬뜩할 정도로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인터넷에 테슬라를 검색해 보았다. 2010년도 후반에 미친듯한 주가 상승으로 비트코인과 함께 한국에 투자 열풍을 불러 일으킨 전설의 회사인 테슬라. 하지만, 역시나. 나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고, 인터넷에는 테슬라는 커녕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조차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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